밑줄책

외향적 엠패스, 초민감자

진주조개 2024. 7. 13. 23:02

 

영성에 입문을 하고 나서부터 자주 들었던 단어 중 하나가 엠패스, 초민감자였다.  마음공부(?)를 한 지는 2년 정도 되었는데,  영성계에 입문하다 보면 엠패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내가 이해한 엠패스는 예민하고, 감각이 발달해서, 사회생활을 하기에 힘든 사람들이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사회생활을 아주 활발히 하고 만족할만한 성취도 이뤄 낸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엠패스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예민한 직원을 무척 불편했었다. (나는 팀장이었다) 예민한 직원들과 일을 하다 보면, 일이 착착 진행이 안되고 딜레이 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무던한 스타일의 직원들을 선호했었다. 

 

마음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성 관련 세션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이 엠패스라 너무 힘들다며 우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시간을 내서 참석을 한건데 그 한 사람 때문에 전혀 진행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진행자는 그 사람의 말을 천천히 듣고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게 두었고, 함께 참여한 사람들은 같이 울기까지 했다. 우는 사람들 틈에서 상대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그 당시 내 컨디션이 정말 최악일 때였는데, 세션에 참여하고 나면 컨디션이 더욱 안 좋아져서 그 세션에는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힐러 한 분을 통해 내가 엠패스 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내가 굉장히 신뢰하는 분이 해주는 조언이었던지라  좀 충격을 먹었다. 그리고 관련 서적을 뒤졌다.   주디스 올로프의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라는 책을 만났다.

 

 

엠패스, 초민감자

초민감자의 신경계는 극도로 예민합니다. 우리는 남들처럼 외부 자극을 차단하는 필터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체의 주변에 흐르는 긍정과 고통의 에너지를 무차별적으로 흡수합니다. 얼마나 예민한가 하면, 물체를 움켜주니 손의 손가락이 다섯 개가 아닌 오십 개인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과민 반응자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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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민감자는 종종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며 "사람이 좀 대범해져라"라는 충고를 듣습니다. 어릴 때나 성인이 되어서나 우리는 민감성을 격려받기 보다 그로 인해 창피를 당해왔습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고, 세상이 너무 위압적으로 느껴져 수시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나는 초민감자입니다_주디스 올로프> 에서 발췌.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627194

 

일단 나는 늘 대범했고 리더였다. 그리고 언제나 많은 사람들과 일을 했다. 기획 파트에서 일을 했는데 100~200명과 함께 일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저 책표지에 써져 있는 '지나친 공감 능력 때문에 힘든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 사람한테 공감능력이 없다고 질타와 비난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혀 내가 초민감자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계를 맺는 방식 : 내향적 초민감자와 외향적 초민감자> 파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관계를 맺는 방식 : 내향적 초민감자와 외향적 초민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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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수의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규모가 큰 파티나 모임은 웬만하면 피하는 편입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수다 떠는 걸 싫어하고, 어떻게 하는 건지도 잘 모릅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릴 때는 두세 시간만 지나도 과잉 자극을 받아 힘들어하죠. 제 친구들은 이런 저를 잘 알아서 먼저 가보겠다며 일어서도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외향적인 초민감자는 남들과 교제할 때 말이 많고 대화를 이어갈 줄 알며, 내향적인 초민감자에 비해 농담도 편하게 주고 받습니다.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에서도 지치거나 과잉 자극을 받지 않고 비교적 오래 머물 수 있죠

<나는 초민감자입니다_주디스 올로프> 에서 발췌.

 

나는 외향적인 초민감자였던 것이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마음공부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일단 나는 워커홀릭이었다. 일을 과도하게 많이 했고 만성피로에 시달리곤 했다. 단순히 업무량이 많아서라고 생각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어서 그랬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일이 잦았고, 갈등으로 이어지곤 했다. 내 인간관계는 좋지 못했다. 나는 성취했지만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외향적인 성격을 통해 일을  꾸역꾸역 진행해 나갔던 것이다.

 

잔병치레가 많았는데, 눈이 침침하고, 소화가 안되고, 피부가 가렵거나 하는 일들이 생겨 안과, 내과, 피부과로 각각 가면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한다. 내시경을 해도 깨끗하고, 뭐 별 이상이 없다.  이후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고,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몸 관리를 잘해오고 있다. 사실 오늘도 다녀왔다. 선생님이 진단하신 내 병은 정혈부족이다. 에너지를 과하게 쓴다는 것이다. 내가 엠패스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일할 때는 그렇다 치고 백수인데 왜 계속 몸이 안 좋은지 의문이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나는 왜 이렇게 몸이 약할까라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찾아서

자신이 파트너의 스트레스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여태 파악하지 못했다면, 무의식적으로 연인 관계를 피하거나 사랑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만 끌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감정이 안 될 정도로 짓눌릴까 봐 두려웠던 거죠. 소울메이트를 원하는 내가 있는가 하면, 탈진하고 질식하거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무서운 나도 있는 겁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친밀해질수록 공감 능력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불안감도 커집니다. 그래서 초민감자는 종종 '사랑 불능자'를 선택합니다. ....
사랑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보이며 헷갈리는 메시지만 던져주는 사람을 고릅니다.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친밀함을 끊임없이 갈망만 하는 거죠. 

<나는 초민감자입니다_주디스 올로프> 에서 발췌.

 

나는 연애를 두 번밖에 하지 못했다. 짝사랑을 한 적이 많았는데 이룰 수 없는 상대들이 대부분이었다. 친구들이 왜 저런 남자들을 좋아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나는 내 영혼이 자유로워서 그렇다고 대답하곤 했다. 사실 나는 사랑할 준비가 안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를 좋아할 리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을 마음에 품어서  절대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내 무의식이 만들고 있었다.

 

연애를 할 때도 정말 많이 피곤했었다. 하루종일 같이 있는 날엔 너무너무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내가 이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나 보다 했었다.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으니깐. 

이 책에서는 남편과 각방을 쓰거나 침대를 따로 쓰는 방법을 제안한다. 너무 반가웠다. 내가 꿈꾸는 결혼생활이었으니까. 나의 이 또라이 같은 생각을 누가 동의해 줄까라며 마음 한켠에 묻어 두고 있었던 그것을 작가의 소리로 들으니 너무 신이 났다. 내가 또라이가 아니었구나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보통 그런 말 많이 하지 않나. 부부싸움을 했어도 잠은 같이 자라. 나에게는 정말 끔찍한 소리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저 내 특성이었구나를 알게 해 준 책이다.

작가가 알려준 나를 보호하는 방법들이 그리 와닿지는 않지만, 내가 초민감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축복이다. 앞으로 직업을 정할 때나 사랑을 할 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여장부처럼 씩씩하게 꾹 참고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달려온 커리어우먼들 중에 나 같이 엎어진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초민감자인지 의심해 봤으면 좋겠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본인이 초민감자인지 인지 못할 확률이 높다.  과도한 책임감 또는 불안감으로 내달리기만 한 건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재충전이 되었으니 다시 예전처럼 힘차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절대 못 돌아갈 것 같다. 그건 지옥이다. 나에게 맞지 않는 세계이다.

 

첫 부분에 쓴 상황을 이제야 해석해 보자면, 초민감자라며 울었던 그 참가자의 우울함을 나도 모르게 고스란히 흡수하고는 그 자리가 싫어서 도망가 버렸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잘 한 행동이다. 나를 보호하는 게 우선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공감능력이 없다고 비난을 받았던 것도 사실은 나를 제대로 보호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냥 모른 척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걸 다 느끼면 너무 힘드니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초민감자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민감하고 다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더욱 성장합니다.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초민감자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민감하고 다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더욱 성장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얼른 만날 수 있기를,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나를 보호하면서도 사람들과 즐거운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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