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 중요한 이슈들이 나오는데, 어떨 때는 '이런 일도 있었어?' 하고 지나가게 되는데, 어떤 이슈에는 계속 빠져들며 기사를 뒤져 보게 된다. 얼마 전에는 민희진과 방시혁이 그랬고 요즘은 홍명보다. 스포츠, 케이팝 다 관심 있는 분야이긴 하지만 유독 관심을 끌어당기는 뉴스들은 내 무의식을 자극한 거다. 뭔가 유독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내 안에 있어서 그런 거다.
https://youtu.be/zreKxNi5CPI?si=lzu4Fvno8CuMZ6zU
2002년에 재수를 했었다. 재수학원이 서대문에 있었는데, 몇 걸음만 나가면 거리응원을 하는 장소였으니, 학원 측에서 우리를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수능이고 뭐고 그저 즐겁고 행복했다. (나는, 월드컵이 끝난 이후로 정말 공부가 잘됐었다.)
히딩크라는 어떤 외국인 감독이 와서는 본인의 생각대로 뚝심 있게 선진적으로 우리 팀을 개선해 나갔다. 그 결과 세계 최강팀들과 훌륭한 경기를 펼쳐내니, 당시 축구 국가대표팀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전 국민에게 알려준 정말이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특히 박지성은 히딩크가 아니었으면 절대 선발되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4강 신화의 주역이 되어 후에는 맨유에 입성하기까지 했으니 정말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견고한 벽이 무너지고, 뭔가 다 같이 해낸 느낌. 그 시절 모두 낭만에 젖어들었다. 금세 현실로 돌아왔지만. 그 시절에 우리는 다 같이 꿈을 꾼 기분이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흘러간 지금, 축구감독 선임문제로 축구계가 정말 시끄럽다. 클린스만 이후로 감독을 못 정하고 있다가 결국 홍명보 감독이 우리 국가대표 감독으로 선임이 되었다. 홍명보. 이 사람은 좋고 말고 할 인물이 아니다. 당시 우리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든든한 기둥이었다. 그냥 홍명보다. 그랬던 사람이 절대 국대감독을 안 맡겠다고 했다가 이틀 만에 번복하고 자기가 맡고 있던 팀을 버리고는 외국인 코치를 물색하러 유럽으로 떠나버렸다.
https://www.youtube.com/live/0stSZUfmodY?si=-NhgDqb8UtgWMRyu
2002 레전드들에게 이 사태에 왜 침묵하고 있냐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질타를 했다. 아마도 영향력 있는 박지성과 안정환한테 거는 기대가 컸으리라. 결국 박지성이 인터뷰를 했고, 또 한 번 나는 박지성 때문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어떻게 저렇게 우아하고 정확하며 강단 있게 이 사태를 짚어서 말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돌려봤다. 그리고는 알았다. 홍명보와 박지성이 내 수치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수치심의 경험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이다. 나는 유치원에 다니지를 않고 바로 초등학교에 갔으니, 그때 담임선생님이 나의 첫 번째 선생님이다. 어느 날, 종합장에 크레파스로 단어를 쓰는 숙제를 내주셨다. 크레파스가 번지니, 앞면만 쓰고 뒷면은 쓰지 말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랑 숙제를 하는데, 엄마가 아깝게 왜 뒷면에 쓰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랑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뒷면도 써서 숙제를 해갔다. 다음날 줄 서서 숙제검사를 받는데, 뒷면까지 썼다고, 뺨을 맞았다. 아주 세게. 나를 데리러 온 엄마랑 학교를 나오면서 엉엉 울었었다. 기억에 엄마도 같이 울었다. 엄마는 고아나 다름없었는데, 엄마도 어떻게 엄마를 해야 하는 건지 잘 몰랐던 거 같다. 엄마는 결국 학교에 소환이 되었고, 선생님에게는 돈봉투와, 친구들에게는 빵을 돌렸었나 그랬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뺨을 맞고 돌아온 딸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굴욕적이다. 그때의 큰 충격으로 나는 모범생이 되었다. 선생님 말에 집중하고, 준비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공부도 열심히 뭐든지 열심히 했다. 부모님한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선생님한테 맞고 싶지 않았다. 나는 권위라는 것에 완전히 굴복당했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는데, 부모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음과 동시에, 나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부모를 믿지 못하면서 강해지기로 마음을 먹고 뭐든 열심히 했다. 최악인 거다. 약하디 약한 애가 강해지고자 마음먹으면 그게 어떻게 되겠는가? 괴물이 되는 거다.
개혁하고, 시작하고, 개선하는 일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주어졌다. 나름 창의적이고, 참신한 기획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타협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상대를 원망했다. '왜 변화를 싫어하지?', '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알아주지를 않지?' '왜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집만 부리지?'라고 하면서 '나는 열심히 일하는데 저 사람들이 방해한다', 혹은 '나는 문제가 없는데 저 사람들이 문제다.'라는 생각에 늘 사로 잡혀 있었다. 이건 나의 축이 아니라 타인의 축으로 사는 방식이다. 행복할 리 없었다.
주로 공공의 영역에서 일했는데,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주입하려 하고,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이걸 하면 사람들에게 좋다.' 이런 생각으로 밀어붙이면서 따라 주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욕먹고 공격당하는 것은 두려워서 타협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방식대로, 내가 뜻하는 바대로 밀어붙이는 듯했지만 사실은 다 타협하고 있었다. 오히려 어정쩡하게 해서 힘만 빼는 경우가 많았다. 무서웠다. 나는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안전하고 싶었다. 누가 날 보호해 주길 바랐다. 그랬다 엉망진창이었다. 꼬일 대로 꼬였었다. 지금 축구계처럼.
결론적으로, 박지성은 존경스럽다.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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